네덜란드 – 땅보다 바다가 높은 나라
네덜란드는 국토의 약 26%가 해수면보다 낮은 지역에 위치해 있어, 전 세계에서 가장 침수 위험이 높은 국가로 꼽힙니다. 특히 암스테르담, 로테르담, 헤이그 등 주요 도시들이 저지대에 집중되어 있어, 바다와 강의 위협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 때문에 네덜란드는 수 세기 전부터 해수와의 싸움을 이어왔으며, 오늘날에도 해수면 상승은 국가 존립에 직결되는 핵심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만약 해수면이 1m 이상 상승할 경우, 현재의 제방과 배수 시스템만으로는 거대한 도시와 농경지를 보호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를 대비해 네덜란드는 20세기 중반부터 “델타 프로젝트(Delta Works)”를 추진해 왔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해양 방재 체계로, 해안선과 강 하구에 위치한 방조제, 수문, 이동식 차단벽 등을 통해 홍수 위험을 줄이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델타 프로젝트는 단순한 방어 개념을 넘어, 바닷물의 흐름을 제어하고 필요시 해수를 내륙으로부터 격리할 수 있도록 설계된 초대형 시스템입니다.
지도화 기술 측면에서도 네덜란드는 세계적인 선도국가입니다. 국가 차원에서 항공 LIDAR와 고해상도 위성 영상을 활용해 세밀한 지형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기반으로 정밀한 침수 예측 지도를 제작합니다. 이 지도는 일반 시민에게도 공개되어 있어, 누구든지 자신의 주거지나 생활권이 침수 위험에 얼마나 노출되어 있는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지방정부, 학계, 민간 기업, 시민이 협력하는 ‘개방형 데이터 생태계’를 운영하여, 지도화된 정보가 도시계획, 재난 대응 훈련, 보험 정책 등에 즉각 반영될 수 있는 체계를 확립했습니다.
결국 네덜란드의 사례는 해수면 상승 대응에 있어 단순히 제방을 쌓는 물리적 방어를 넘어, 장기적 도시계획·첨단 지도화 기술·시민 참여형 대응 체계가 결합된 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앞으로 해수면 상승 위험에 직면할 전 세계 연안 국가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제공하는 사례로 평가됩니다.
베니스 – 물 위에 지은 도시의 한계
이탈리아 북동부의 수상 도시 베니스는 지리적 특성과 기후 변화가 맞물리며 해수면 상승의 가장 대표적인 피해 도시로 꼽힙니다. 도시는 여러 개의 섬 위에 건설되어 있으며, 해수면과의 차이가 거의 없는 구조적 특성 때문에 작은 조수 변화에도 쉽게 물에 잠깁니다. 특히 기후 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과 집중호우가 겹치면서 “아쿠아 알타(Acqua Alta)”라 불리는 고조 현상이 점점 더 자주 발생하고 있고, 이는 베니스 시민들의 일상뿐 아니라 세계적인 문화유산에도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습니다.
2019년에는 기록적인 침수가 발생하여 해수면이 무려 187cm까지 상승했으며, 이로 인해 성 마르코 대성당을 비롯한 주요 건축물과 유산 지구가 심각하게 침수되는 피해가 있었습니다. 당시 도시 전체가 수억 유로 규모의 경제적 손실을 입었고, 관광 산업과 지역 경제 전반에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베니스가 단순한 관광 도시가 아니라, 해수면 상승의 최전선에 서 있는 실험장이자 경고의 사례임을 잘 보여줍니다.
이탈리아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규모 방재 사업인 MOSE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는 해수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바닷길에 가동식 차단벽을 설치하는 사업으로, 원래는 이미 완공돼야 했지만 공사 지연, 막대한 유지·보수 비용, 기술적 문제 등으로 인해 아직 완전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OSE는 베니스가 단기적으로 침수를 막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현실적 대책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지도화 측면에서 베니스는 다른 도시들에 비해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도시 구조가 매우 복잡하고 좁은 골목과 고밀도의 유산 지구가 많아 고해상도 지형 데이터 수집과 활용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기술을 활용하여 도시 전체를 가상 시뮬레이션으로 재현하고, 침수 시나리오를 미리 예측하는 방식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세부 위험 지도나 실시간 정보 제공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입니다.
결국 베니스는 단순히 문화유산 보존 차원을 넘어, 해수면 상승과 상시 침수 위험 속에서 지속 가능한 도시로 살아남을 방법을 구체화해야 하는 시점에 놓여 있습니다. MOSE 프로젝트와 같은 물리적 차단 장치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도시 구조 개편, 고위험 지역 재설계, 디지털 지도화 기반의 시민 참여형 대응 체계가 필요합니다. 이는 단지 베니스만의 과제가 아니라, 전 세계 저지대 연안 도시들이 앞으로 직면할 공통 과제를 미리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런던 – 템스강의 수위와 도시의 생존
영국의 수도 런던은 템스강 하구에 자리 잡고 있어, 내륙 깊숙한 곳까지 해수의 영향을 받는 대표적인 대도시입니다. 특히 영국 해안은 조수 간만의 차가 크기 때문에, 홍수와 해일이 겹칠 경우 런던 도심이 직접적인 침수 위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위험성을 인식한 런던시는 1980년대부터 거대한 수문 시스템인 템스 배리어(Thames Barrier)를 설치하고 운영해 왔습니다. 현재까지도 템스 배리어는 런던을 보호하는 핵심 시설이지만, 급격히 진행되는 해수면 상승 속도에 대한 불안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지난 30년 동안 해수면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으며, 2100년까지 최대 1.5m가량 상승할 수 있다는 예측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면, 기존의 템스 배리어만으로는 런던 전역을 방어하는 데 한계가 뚜렷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대비해 런던시는 “템스 타이달웨이(Thames Tideway Tunnel)”라는 초대형 인프라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며, 저지대 지역의 재개발과 도시 구조 개편도 동시에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방어 시설을 강화하는 수준을 넘어, 도시 전체를 기후위기에 맞게 재설계하는 장기적 전략의 일환입니다.
또한 런던은 지도화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도시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3D GIS 기반의 “Flood Risk Map” 시스템을 도입하여 시민 누구나 자신의 주소를 입력하면 해당 지역의 침수 위험도를 바로 확인할 수 있도록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시민 개인의 안전을 위한 정보 제공을 넘어, 보험사, 공공기관, 도시계획 당국이 정책과 전략을 수립하는 데 중요한 데이터 기반 역할을 합니다. 특히 저소득층이 밀집한 지역이나 공공 인프라 시설이 많은 구역은 우선적으로 관리 대상에 포함되어, 사회적 불평등이 재난으로 심화되는 상황을 막고자 합니다.
결국 런던의 대응은 물리적 차단 시설, 데이터 기반 지도화, 도시 구조 개편이라는 세 축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는 도시 생존 전략이 단순히 건설 기술에 국한되지 않고, 정보 공개와 데이터 활용, 사회적 형평성 고려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런던은 해수면 상승이라는 전 지구적 위기 속에서, 지도 기반의 기후 전략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사례 중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